I. 한국사회의 진단과 변혁운동에 대판 평가
1. 저무는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 시대교체기의 안개 속으로
1)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한 87년체제의 탄생과 한계
(1) 2020년대까지 두 세대를 지배해온 민주화와 산업화의 주역
한 세대의 기간을 사회의 독립적인 주체로서 준비하는 기간, 사회의 주축으로서 활동하는 기간, 퇴장하는 기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기간은 역사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유동적이다. 현대사회는 고도의 분업에 따라 직업이 다양해지고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교육과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진다.
현재 한국의 경우 대학교육과 병역, 취업준비로 인해 청년들이 자주적인 사회적 주체로 진입하는 시기가 더 늦어지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 노동계급이 아직 사회운동의 주축으로 성장하지 못할 때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의 골칫거리가 될 정도로 강력했다. 산업화로 국민소득이 급증하고 사회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대학진학률이 급증하면서 학생이 정권의 가장 큰 비판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부모들의 출신계급을 배경으로 갖고 있지만 의존계층으로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구속되지 않고 지식과 양심, 성향과 열정에 따라 학생운동에 참여해왔다. 따라서 이 시기 학생들은 경제주체로서 활동하기 전인 20대 초반에 우리사회의 주축세력으로서 위상을 지녔다. 이들이 대학을 떠나 노동현장에 들어갔고 급격한 산업화로 급증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의식화시켰다.
노동인권탄압과 가혹한 착취 때문에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계급과 결합한 학생운동 출신들이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을 건설했다. 오늘날 민주노총은 여전히 학생운동 출신들을 품고 있지만 더 이상 학생운동 출신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민주노조이다.
학생운동은 김대중, 김영삼으로 상징되는 부르주아민주주의세력과도 손을 잡았다. 이들 소위 재야세력들은 외로운 투쟁의 시대를 견디어 내면서 80년대부터 산업화로 인한 노동계급, 대학교육 확대로 인한 지식인과 전문직 노동자, 소득증가와 함께 성장하는 시민운동이라는 강력한 동맹세력을 얻었다.
노동자와 지식인, 시민을 등에 업은 이들 재야세력들은 제도권 내외에 강력한 민주주의전선을 형성하여 1987년 6월 직선제헌법을 쟁취했다. 오늘날 과거의 재야세력 즉 부르주아정치인과 이들과 결탁한 학생운동 출신들은 우리사회의 지배계급의 한축을 차지하고 기득권세력이 됐다.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으로 군사정권이 수세에 몰리자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이 7월 공장을 점거하거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6월 민주화투쟁에서 어깨를 같이 걸었던 부르주아민주주의 세력들이 노동계급의 주도권을 경계하면서 자본의 편에 섰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절반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1987년 체제를 계기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노동계급이 시민권을 얻고, 시민들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 후기산업사회에서 고령화 세대의 사회적 역할 재조
1955년생부터 1974년생에 해당하는 학생운동세대는 전체 1,70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민주화세대일 뿐 아니라 산업화세대이다. 일단 학생운동 인사들의 상당수가 정치인, 법조인인 뿐만 아니라 이명박처럼 직업인으로서 산업화에 기여했다. 이 세대의 일반인도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자로서, 노동운동을 했든 자본가에게 순응했든 산업화의 일꾼이다. 하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이들 세대는 일 년에 백만 명 가까이 정년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는 고령화사회의 주역으로 다시한번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강한 활동력과 정치지향성을 띠고 있어 정년연장 논의와 시위광장의 좌우대립에서 보듯이 당분간 한국의 경제와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태극기부대에서 보듯이 60대 이상의 장년층들은 청년기에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해도 오랫동안 보수적 환경에 노출되거나 주택보유 등 자산소유자로서 점차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
건강수명의 연장으로 아직도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60대 이상의 장노년층 사이에 좌우대립은 우리사회의 여론형성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60대 이상의 민주화세대 역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일부는 아직도 조직적 참여를 계속하고 있다. 정년 이후 노동자 역시 자신의 노년빈곤 문제와 사회복지 의제는 물론 연금노동자로서 노동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3) 한발도 전진하지 못하는 분단사회
거대한 학생운동의 물결 속에서 우리사회의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은 중요한 성과를 실현했고 시민운동이 태동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지만 유독 통일운동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통일은커녕 남북평화와 남북교류마저 진전이 없는 이유는 소련붕괴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냉전, 미국의 중러봉쇄전략에 따른 한국에 대한 전면적 지배 강화, 친미친일과 냉전수구에 기생하는 정치경제집단 때문이다.
2)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의 퇴장과 후속세대의 불안정성
(1) 50여년을 사회지도층으로서 향유해온 학생운동세대
보통 한 세대는 교육, 군복무, 취업준비를 거쳐 사회에 진출한 후 정년 때까지 길어야 30년을 주축세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1980년대 학생운동세대는 20대 초반부터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대학을 떠난 이후에도 노동운동, 제도권정치, 시민운동에 참여해왔다. 심지어 사업가로 성공해 대통령까지 지낸 이명박이나, 김문수, 이재오 등에서 보듯이 학생운동 출신들은 자본가의 참모나 보수정당의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한마디로 전 분야에서 주도적 지위를 향유해왔다. 학생운동세대들은 1980년대부터 2026년 지금까지 정년이 넘었지만 맹렬히 활동 중이다. 이들 세대들은 한 세대가 아니라 거의 두 세대라고 볼 수 있는 5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주축으로 활동해 온 것이다.
학생운동세대로 대표되는 민주화세대뿐만 아니라 그 연령대의 산업화세대 역시 이렇게 한 세대가 아니라 50년이라는 한 시대에 걸쳐 사회적 주도권을 유지해왔다. 고령화사회에서 환갑 이후에도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이들 민주화와 산업화세대들이 사회적 주도권을 유지하는 동안 직속 후속세대들은 이렇다 할 사회적 주도권을 향유해 본 적이 없다.
(2) 잊혀진 중간세대와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대
일단 학생운동세대들은 인구가 많고 후속세대들은 산아제한과 저출산으로 인구가 적다. 역삼각형 인구구조이니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중고령층이 사회전반의 결정권을 향유하고 있다. 학생운동세대들은 사회팽창기에 어떤 분야이든 조기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현재 세대들은 취업경쟁으로 준비기간이 길고 번듯한 정규직을 얻기 힘들다.
현재 대학생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력도 없고, 학생운동을 유인할 수 있는 구조적 격변도 없다. 무엇보다 학생운동 이외에도 다양한 부문운동이 이미 성장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으니 격변을 겪지 못한 후속세대들은 온갖 풍상을 이겨낸 학생운동세대들보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가 한 세대가 아니라 50여 년 동안 시대를 누려왔지만 이제는 육칠십 대를 바라보면서 고령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퇴장하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들은 이미 수년 동안 엄청난 수가 정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앞으로 10년 안에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을 종료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다음 시대를 주도할 후속세대들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베이비봄세대와 386세대 이후 여러 세대구분이 있었지만 저출산사회, 후기산업사회와 다변화된 소비사회의 단편적 특징만을 반영할 뿐이다. X세대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정착된 이후 사회활동에 나선 세대로서 사회적 억압과 구속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주의를 중시한 최초의 세대였다.
M세대는 본격적인 인터넷시대를 즐겼지만 세기말의 저주처럼 청소년기에 1997년 국가부도사태나 청년기에 2008년 금융위기사태를 겪으면서 본격적인 취업난을 맞이해 생존의 위기를 겪었다. Z세대들은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이후 사회활동에 나섰기 때문에 모바일 환경, 본격적인 고용 없는 성장, 성장률 침체 등 선진국이 직면하는 풍요 속의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알파세대는 인공지능세대로 지칭되고 있다.
후속세대 중 어떠한 세대도 사회의 전 분야를 주도하고 자기 세대를 넘어 한 시대를 규정할 수 있는 정도의 주도력이 없기 때문에 난잡할 정도로 각종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생기고 있다. 민주화나 산업화처럼 한 시대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두 자체가 사라진 후기산업사회, 더구나 저성장하는 저출산고령화사회에서 사회적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시대를 지배하는 화두와 세대가 실종된 것이다.
2. 후기산업사회의 변혁운동의 조건변화
1)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변혁성 약화
후기산업사회에서 노동운동이 지배계급으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함으로써 반체제세력에서 체재 내 세력으로 제도화됐다. 노동조합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운동과 동치가 됐으며, 노동조합 밖의 사회운동과 단절됐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운동으로서 성격을 상실하고 노동인권, 임금인상, 고용유지 등 노동조건 개선투쟁으로 순화됐다.
고용 없는 성장, 대공장과 굴뚝산업의 퇴조, 노동자의 고령화, 신분보장이 불안한 비정규직의 증가, 노동계급의 분화, 노동의 개별화와 파편화로 인해 노동조합의 주체역량 역시 꾸준하게 후퇴하고 있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소득이 증가하고 고등교육이 확대됨에 따라 정치사회적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있는 시민들이 급증했다. 이러한 각성된 시민들은 참여연대, 환경연합처럼 다양한 시민운동에 참여해왔다.
따라서 후기산업사회에서 시민운동이 활성화된다. 6.10시위,, 박근혜과 윤석열 탄핵집회처럼 시민들이 민주화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물론 노동자와 시민은 교차되는 계급과 계층이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대중적 진보정당에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강력한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이런 정당이 사라진 후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사안에 따라 협력하지만 운동의 내용과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기도 한다. 다만 시민운동은 노동운동보다 변혁성이 더 약하다고 볼 수 있다.
2) 자본주의 전복의 경제조건 심화
현재 독점자본주의는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독점자본에 지배당하고 있다. 외환과 금융공황에 따라 산업공황이 직접 영향을 받는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저성장과 침체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물자본은 단기적인 가시효과를 누릴 수 있는 부동산과 건설산업에 치중한다. 그 결과 자산가격에 거품이 형성돼 언제든지 거품 붕괴로 인한 위기가 잠재돼 있다.
저성장 속에서 자본집약산업으로의 전환, 자동화, 인공지능은 고용 없는 성장을 더 악화시킨다. 개인의 경제생활에서 실물경제 즉 고용보다는 자산소득이 중요해진다. 노동자들조차 금융자산과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투자한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인구가 1,400만 명을 넘었다. 결국 노동자의 과반수이상이 어떤 형태이든 주식투자에 참여하는 셈이고 대부분의 가구들이 주식투자와 관련이 있다. 주식은 자산의 일부 즉 지분을 소유하는 것이다.
주식소유는 비록 자본주의적 방식이지만 일종의 사회적 소유인 것이다. 스마트공장이나 자동화시설의 경우 그것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이에 대한 주식소유의 욕구를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 사회적 소유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증가한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경쟁의 격화와 실업의 증가는 일자리에 비해 상대적인 과잉인구를 양산한다.
자녀들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양육비용이 증가하므로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을 회피한다. 결국 인구정책과 고용정책은 사회의 생존전략이 되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의 과업으로 제기된다. 상대적 과잉인구를 고용을 통해 부양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실업급여는 일반화되고 일상적 실업급여로서 기본소득도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된다. 즉 재생산문제가 사회적 과제라는 공감대가 확산된다.
3) 후기산업사회로서 한국의 특수성
(1) 재벌의존성
그람시에 따르면 러시아와 달리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정착된 유럽에서 노동계급이 사회다수의 지지를 받아 사회변혁을 추동하려면 중간층까지 포섭해야 한다. 후기산업사회에서 독점자본이 중소기업을 원하청관계로 지배하고 농업까지 산업분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로코뮤니즘은 자본가계급 전체가 아니라 독점자본에 대한 타도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로코뮤니즘의 논리에 따르면 소자산가는 노동계급과 한편으로 대립하지만 크게 보면 독점자본의 피해자이다. 따라서 노동진영이 다수자의 변혁을 실현하려면 이들 중간층과 연대하여 독점자본을 포위해야 한다. 이처럼 후기산업사회에선 자본일반에 대한 투쟁보다 독점자본에 대한 투쟁이 강조된다.
한국은 다른 후기산업사회보다 독점자본 특히 재벌이 전 산업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전복투쟁은 반독점 반재벌투쟁의 내용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경제에서 시민들은 물론 노동자조차 수출을 통한 성장, 수출에 의존하는 삼성, 현대 등 독점재벌을 통한 성장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에서 대외의존성 극복과 독점재벌 극복이 중요한 과제이다.
다만 재벌이 3대에 걸친 세습과정에서 자녀들에게 분산됨으로써 과거에 비해 집중 수준이 떨어졌다. 반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처럼 독점대기업의 장악력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가 글로벌 차원의 경쟁에 노출된 상태에서 삼성반도체나 현대자동차를 해체한다든지, 바로 국유화를 한다는 것은 현재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외자본의 소유지분을 서서히 낮추고 노동자민중의 지분과 통제를 확대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2) 미일중에 대한 대외의존도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 역시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기술과 자본원자재의 수입, 미국으로의 수출이라는 3각무역을 통해 중진국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21세기 초반부터 중국이 미중분업을 통해 성장하면서 한때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합한 것보다 높았다.
현재 미국이 미중분업을 조정하면서 한국에게 중국과 손절할 것을 강요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의존도는 다소 주는 추세이다. 한국은 분단사회로 북쪽으로 경제를 확장시킬 수 없고, 일본 쪽으로 확장하는 것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영토와 인구가 광대하지 않은 한국이 현재의 경제수준을 유지하려면 내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무역의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남북통일과 중국동북지방의 경제발전, 일본과 동아시아의 경제를 연결하는 경제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국지적 냉전과 정치적 갈등이라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단점이 사라지는 먼 훗날의 이야기다. 일본경제의 위상이 추락하는 조건에서 대일 의존도는 굳이 관리할 필요가 없지만 미중 의존도는 낮출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신의 미중분업을 일부만 조정하면서 한국에 탈중국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은 지정학적으로 불가피하나 정치군사적인 대미종속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의존도를 더 낮춰야 한다. 고부가가치 상품의 경우 유럽수출뿐만 아니라 중국경제의 발전에 따른 대중 수출을 늘리고 저부가가치상품의 경우 인도와 같은 인구대국에 대한 수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
3. 분단사회와 변혁운동의 조건변화
1)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장 이후 남 변혁운동의 변화
북은 남의 사회를 식민지반봉건사회에서 식민지반자본사회로 변화됐다고 보면서 남의 변혁전략을 혁명기지론에서 지역혁명론으로 수정했다. 지역혁명론에 따르면 남의 산업화로 인해 노동계급이 혁명의 지도계급으로서 성장했다. 지역혁명론은 다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론으로 수정됐다.
후자는 민주화 이전의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합법적인 제도공간이 열렸기 때문에 대중투쟁을 토대로 하여 의회와 선거를 통한 민중 중심의 자주적 민주정부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대중투쟁의 정치노선으로서 자주민주통일은 별다른 논쟁 없이 정립됐지만 합법정당에 대한 전략은 중도정당 참여를 둘러싸고 혼선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독자적인 진보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이 성공적으로 창당되자,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는 합법공간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평등계열과 자주계열이 역사적으로 뭉친 민주노동당에서 당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자주계열은 전반적으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자주적 민주정부 노선에 부합하는 진보적민주주의 강령을 다수결로 관철했다.
2) 진보정치 분열과 대중조직 내의 갈등으로 인해 변혁역량 훼손
(1) 진보정치의 분열 및 쇠퇴와 민주당의 포섭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하자 당내 정파들 간에 당직과 공직에 대한 경쟁이 발생했다. 이 경쟁의 후유증은 다수결의 남용에 따른 패권문제로 악화됐다. 정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투쟁에 당원 다수를 동원하고자 패권문제를 노선투쟁으로 확대하여 2008년 당의 분열을 초래했다.
2008년 진보와 중도까지 참여한 광우병 대중투쟁의 승리를 동력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에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군소야권이 통합하여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여 연립정부까지 기대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노동당과 엘리트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진보신당 탈당 그룹, 신자유주의 정당 국민참여당이 어렵게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지역구와 비례에서 13명을 당선시켰지만 금뱃지를 얻은 자와 못 얻은 자, 금뱃지를 얻은 자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폭발했다. 통합진보당의 내분에 따른 폭력사태, 민주노총과의 결별, 부정선거와 이석기 사태를 겪으면서 통합진보당은 여론의 지지를 상실했다. 박근혜 수구보수정권은 그 틈을 노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통합진보당이 종북으로 낙인찍히면서 해산되자, 정의당이 그 빈 공간을 일시적으로 차지했다. 하지만 정의당의 원내진출은 통합진보당 시절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의 연장선이었지, 자체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정의당은 민주노동당 시절 노동대표성에 대한 다양한 가치지향세력의 반발을 더욱더 수용했다.
그 결과 정의당은 노동중심성을 약화시키면서 당의 대중적 기반을 스스로 협소화시켰다. 결국 정의당은 소수자 가치에 매몰되는 정체성정치를 고집하다가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엘리트정치인이 퇴장하면서 원내에서도 퇴출당했다. 그 사이 진보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원내에 진출했다. 2025년 현재 정의당은 물론, 대중적 기반을 확장한 진보당 역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이 아니라면 원내에 진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 대중조직 내 갈등과 상설연대체의 무력화
민주노동당이 분열되면서 대중운동도 분열됐다. 민중연대는 민주노동당 지지세력이 다수였지만 노동자의힘, 사회진보연대 등 민주노동당 이외의 정치세력까지 참여한 협의체 성격의 상설적인 대중투쟁체였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자주계열 일부는 민중연대를 대의원체제를 도입하여 높은 수준의 통합적인 상설연대체 이론바 통일전선조직으로 만들고자 높은 수준의 강령을 제시했다.
이들 자주계열 일부는 민중연대를 진보연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와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자주노선을 강령으로 고집했고 노동자의힘, 사회진보연대 등 민주노동당 이외의 정치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진보연대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 직후 대선패배 책임과 2008년 비례대표 의석을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하여 결국 일심회 사건을 핑계로 종북타령을 하다 분당됐다.
탈당세력인 진보신당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회단체는 사실상 진보연대에서 철수하여 진보연대는 대중투쟁체로서 위상을 상실했다. 이후 진보연대는 자주계열의 일부까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정파들의 조직으로 치부됐다. 이에 별도로 민중의힘, 민중공동행동 등을 건설했지만 진보정치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그 후유증이 노동자농민빈민 등 기층민중조직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과거 민중연대 수준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자주계열과 평등계열이 참여하는 상설연대체는 출범하지 못하고, 박근혜 퇴진투쟁, 윤석열 퇴진투쟁에서 보듯이 사안별로 노동자, 시민,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일시적인 투쟁체가 가동됐다. 결과적으로 진보정치는 독자적 정치능력을 상실하고 민중진영 역시 독자적 변혁역량을 사실상 상실했다.
(3) 자주화투쟁의 약화와 통일운동의 쇠퇴
통일연대가 한때 남북교류와 통일사업, 평화와 미군철수에 주력했으나 민중연대와 함께 진보연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진보연대 건설이 실패하자 사라졌다. 이후 다양한 관련단체들이 출범했으나 상설연대체로 발전하지 못하고 각자 활동하는 수준이었다. 마지막 대규모 민족해방투쟁은 인천맥아더동상 철거투쟁과 평택미군기지투쟁이었다
맥아더투쟁은 정세와 대중의 요구와 동떨어진 주관적인 투쟁이었고, 평택투쟁은 정당성은 있었지만 대추리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물리적 충돌만 부각됨으로써 수백명이 벌금형을 받았기 때문에 그 후유증으로 오히려 이후 과감한 투쟁이 위축됐다. 민주노동당과 민중단체들이 기획한 마지막 대중투쟁은 2007년 대선을 앞둔 100만 민중총궐기였지만 흉내만 내고 끝났다.
2000년 6.15선언 이후 2007년 노무현 정권 때까지 개성공단과 금강산이 열리면서 남북교류가 활짝 열렸다. 이때부터 남의 통일운동 단체들은 자주사업으로서 대중투쟁보다 방북이나 지원 같은 남북교류사업에 주력했다. 통일단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대규모 방북사업이 어려운 조건에서 여전히 대북지원사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대북사업은 경쟁적 관계라서 이미 자주사업의 대중투쟁의 연대체가 사라진 조건에서 전국적인 연대투쟁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한편 6.15선언으로 북의 낮은단계의연방제와 남의 연합제가 수렴하는 연방제통일방안이 시민권을 얻으면서 민족통일기구를 염두하고 범민련, 6.15, 민화협 등 남북해외 3자기구가 성립됐다.
범민련은 대중투쟁을 지향했지만 가장 높은 수준의 3자기구로서 대중적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고, 이적단체로 탄압받으면서 대중적 동원력을 상실했다. 반면 6.15나 민화협은 애초부터 대중투쟁기구가 아니었다. 박근혜정부 때 남북교류사업은 남북관계가 파탄나면서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결과적으로 통일사업은 대중투쟁도 약화되고 남북교류사업도 막히면서 사실상 운동적 의미를 상실했다.
3) 북의 대남정책의 대전환, 2개의 적대국가론
(1) 핵무장으로 인한 미국 본토 위협과 북미관계의 대전환
북은 미국이 주도하고 중러가 가담한 국제제재와 남북관계단절을 돌파하고 핵무장을 완성했다. 핵무장으로 안보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북은 경제건설에 주력하면서 전 분야에 걸쳐 국내외적 자신감을 과시했다.
북의 핵무력이 미국의 본토를 위협함에 따라 미국은 북미관계를 한반도 문제가 아닌 미국 본토 안보문제로 격상시켰다. 북의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3차례나 양자회담으로 만나면서 한반도 문제를 북미간의 대등한 관계의 문제로 전환했다. 이는 북이 미국과 문제를 풀어가면서 남의 정부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북의 대남 영향력 급감
북은 한반도 전체의 사회주의혁명의 입장에서 남의 변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남의 산업화로 노동계급이 형성되고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북은 남의 변혁은 기본적으로 남의 주체가 이끌어갈 문제라고 본다. 북이 남의 역량이 부족할 때는 북의 지도에 따르는 남의 지하혁명당을 추구했지만 한반도 성공한 적이 없다.
통일혁명당, 가칭 중부지역당, 민족민주혁명당이 북의 지도를 받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남의 자발적인 정당건설이 있은 후 북과 소통한 것이지, 북에 의한 창당은 아니다. 더구나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가 반복되고 합법공간이 중요해지고 남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위상이 높아졌다. 나아가 남북기본합의서와 6.15선언에 의해 남북이 상호체제를 존중하기로 함에 따라 북은 남에 지하정당을 건설할 공식적 명분을 잃었고 그런 능력도 없다.
실제로 최근 발생하는 공안사건은 대부분 정보수집이나 소규모 친북 세포조직 사건들뿐이다. 민주노동당이 자발적으로 창당돼 민중진영과 진보정치세력이 집결한 이후 일부 당원들이 북과 소통했지만 민주노동당과 민중운동에 대한 북의 지도는 구현되지 않았다.
남베트남의 경우도 처음에는 북베트남의 노동당이 남베트남의 변혁운동을 지도했지만 현실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남베트남의 인민혁명당이 건설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지도했다. 남이 못살고 독재시절엔 북을 동경하는 여론이 일정부분 있었지만 이제는 북을 이해하는 경우는 있지만 롤모델로 동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북의 자주적 태도, 북미대결전, 핵무장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여론은 상당하다고 본다.
더구나 북이 남의 통일운동세력에게 기대할 것이 거의 없어졌다. 통일운동세력이 북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대중투쟁을 주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북교류사업도 남 정권의 방해로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3) 남에 대한 실망과 대남사업 및 통일사업의 후퇴
1. 북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노동당의 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와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부분을 삭제하는 등 공식적으로도 대남혁명을 포기했다. 개정 규약은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했을 뿐만 아니라 2010년 규약에 있던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 부시며 사회의 민주화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성원하며” 부분이 삭제됐다.
이 규약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공산주의 건설이다. 또한 개정 강령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표현을 추가했다. 북의 이러한 태도는 남의 변혁에 대한 북의 지도는 노선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가능하지 않고 남의 사회실정에도 맞지 않으니 남의 변혁은 기본적으로 남의 인민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것이다.
2. 2021년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청산하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또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목표로 하고 이에 배치되는 어떠한 사상도 배격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하겠다는 입장은 여전하다.
이런 점을 종합하여 평가한다면 북이 비록 대남혁명은 포기했지만 핵무기경제건설병진노선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에 배치함으로서 미국과의 전쟁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아 주한미군철수 나아가 통일까지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3. 2021년에는 노동당 조국통일부가 폐지됐으며, 통일전선부가 대남사업을 중단함으로서 민경련과 민화협도 폐지되고 6·15공동위와 아태평화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북의 이러한 입장은 2023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남과 북은 적대적인 2개의 국가이며 더 이상 통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정리됐다. 이후 범민련과 6.15공동위원회 등 통일관련 기구도 완전히 폐지됐다.
현재 조선(북)은 대한민국(남)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며, 남의 통일운동은 남의 민중들이 자기 책임 아래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 대남혁명에 대한 지도를 포기한 것은 남북관계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전략적인 문제이지만 한국과 통일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것은 전술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남의 정권이 근본적인 태도변화를 보인다면 조선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적대적 관계를 완화하고 남의 정권을 장기적인 통일의 파트너로서 인정할 수 있다. 즉 북의 입장은 조건을 단 것이므로 남의 정세가 변하면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북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남북관계를 결정할 자주권이 없다는 현실이 장기적으로도 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II. 분단된 후기산업사회에서 운동방향
1. 후기산업사회의 반독점투쟁과 민중전선
1) 노동운동의 변혁성 회복과 현장의 단결
후기산업사회에서 노동운동은 기본적으로 급진적인 변혁운동이 아니라 체제개선운동이다. 기동전보다는 진지전의 성격을 지닌다. 그람시가 말했듯이 민주화된 산업사회에서 러시아식 기동전은 예외적 상황이고 일상적으로 진지전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기동전이 수행돼야 할 비상시국에 변혁운동세력이 항상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변혁세력이 비상시국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없으며, 설사 준비한다고 해도 그 국면의 주도권을 변혁세력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중도보수세력이나 시민계층이 비상시국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후기산업사회에선 민중진영 이외에도 다양한 세력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탄핵 때나 윤석열의 비상계엄 때 민중진영이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또한 비상시국 때 기동전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고 그것이 실제 수행되는 것은 불확실하다. 후기산업사회에서 기동전이든 진지전이든 기본동력은 노동계급이고 결국 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운동이다. 하지만 현재 노동운동, 즉 노동조합운동은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민원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후기산업사회에서 노동대중은 경제적 지위가 개선되고 노동인권도 어느 정도 보장받기 때문에 변혁에 대한 절심함이 부족하다. 오히려 노동조건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하지만 노동해방의 변혁은 노동자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이며, 전체 인민을 위한 사회변혁의 동력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과제는 노동조합운동이 임노동 자체를 폐지하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변혁적 운동의 성격을 일정부분 회복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분열된 조건에서 평등계열과 자주계열 사이의 정치적 단결은 당분간 어렵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연대는 불가피하고 상호간에 필요하다. 일단은 민주당의 민주노조에 대한 장악력이 확대되는 조건에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공동보조를 강화해야 한다. 즉 자주계열과 평등계열이 노동현장에서 갈등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양 진영 모두 노조집행부에 대한 주기적 권력교체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총 내 정파들은 상호간의 의제와 요구를 방해하기보단 상호 존중하여 병행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급진성을 높이는 역할에서 자주계열에 비해 노동현장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는 평등계열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정년퇴직하거나 노동조합 밖에서 활동하는 평등계열들은 노동운동의 변혁성을 유지하도록 노동운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정년퇴직하는 자주계열은 대중투쟁의 자주전선에 복무해야 한다.
2) 독점자본과 사회적 소유에 대한 의제투쟁
현재의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 특히 금융독점자본에 근거하고 있고 한국은 재벌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자본과 재벌에 대한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재벌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 때문에 재벌해체투쟁은 시민은 물론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또한 재벌은 3대째 세습되면서 상당히 분할된 상태이므로 재벌해체투쟁보단 독점자본의 대기업에 대한 사회화 투쟁이 현실적이다.
반독점투쟁은 독점기업 내의 노동자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투쟁을 기본으로 한다. 독점대기업의 노동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수록 하층노동자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결국 단순히 대기업 노동자들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투쟁으로 가기 때문이다.
즉 주5일제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처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대기업 노동자의 투쟁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독점대기업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롤모델과 같은 투쟁이다. 또한 독점이윤을 세금으로 걷어 들이고 이걸 사회보장기금으로 확대하는 것은 소득재분배투쟁이다 특히 최저임금은 각종 임금체계에서 출발점이 되고 실업수당 등 사회보장 급여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투쟁은 전체 노동자를 위한 투쟁이다 .
국공영기업을 민영화할 때 대부분 대기업이나 투기자본이 그 이익을 가져간다는 측면에서 민영화반대와 국공영기업 확대는 반독점투쟁이자 사회변혁투쟁이다. 민영화된 국공영기업을 원래대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 국공영기업의 분할은 이후 쪼개기 민영화의 수순이 될 수 있으므로 허용해선 안 된다. 이런 면에서 KTX와 SRT의 통합은 유의미한 성과이다. 국공영기업에 대한 노동자와 시민의 경영통제도 확대해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를 포함한 공공서비스와 공공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기본권을 완전히 쟁취해내는 것도 민영화를 막고 사회적 소유를 지켜내는 주체동력을 확대 강화하는 투쟁의 일환이다.
3) 민주노총의 지속적인 민중전선 건설 추구
노동자들은 현장의 단결을 자신의 사활적인 이해관계로 직감하고 있다. 때문에 민주노총이 진보정치의 분열에도 그나마 투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민중연대 이후 명실상부한 민중전선이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진보정당들의 분열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현재의 민중전선들이 노선적으로 조직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전선은 상설적인 연대투쟁제인데, 박근혜와 윤석열 퇴진투쟁처럼 사안별로 시민진영 혹은 중도진영과 일시적인 민주전선을 결성할 수 있다. 이 민주전선 안에서 민중진영은 민주당 및 시민진영과 긴장적 협력관계에 놓인다.
2020년 총선과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선거연합정당에 민중진영이 참여할 것인지를 놓고 진보정치와 민중진영 내 갈등이 발생했다. 2025년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는 사회대개혁위원회 참여문제가 대두됐다. 진보진영이 단결한 조건에서 정치적 타협에 따라 민주당과 협력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진보진영단결을 전제로 한 민주당과의 선택적 협력이라는 원칙은 고수되지 못했다.
결국 처음에는 자주계열이 나중에는 평등계열조차 진보정치 단결을 훼손하면서 민주당과 연대하는 사태가 반복돼왔다. 문제는 이제 진보정치가 단결하는 것이 민주당과의 연대문제와 상관없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결국 진보정치 단결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민주당과의 연대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치부됐다. 현재의 민중공동행동 역시 이러한 형태를 반복함으로써 민중전선의 대표성이 훼손됐다.
이처럼 진보정치가 분열되고 민주당의 포섭력이 강화되는 조건에서 명실상부한 민중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자신의 존립 목적인 노동해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민중세력을 규합하는 민중전선 구축을 포기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 민중전선의 실질적인 지도력을 행사할 때 민중전선의 대표성이 제고될 수 있고 민중진영의 민주당과의 연대문제도 노조민주주의의 견제 아래 질서 있는 대응이 가능하다.
2. 분단사회의 개혁과 변혁의 병행투쟁
1) 진보정치의 주체역량의 한계와 민주당과의 사회개혁연대
운동에 대한 평가는 사회에 미친 부분과 그 주체에 대한 부분으로 나눠진다. 이를테면 소련은 전체 인류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자신의 사회주의를 완성하는데 실패했다. 역시 한국의 진보정치는 사회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즉 진보정치는 나름 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필요하다.
다만 진보정치가 분열됨으로써 자신을 변혁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는 것을 실패했다. 현재로선 진보정치통합은 민주노동당 세대가 퇴장할 때까지 어려울 수 있다. 민주노동당 분열로 인한 조직적 갈등과 인간적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 진보정치가 분열돼 독자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킬 역량이 없다고 해도 민중을 위한 사회개혁운동에 힘을 보태야 한다.
사회주의나 진보정치가 민중들을 위해 존재하지 민중들이 사회주의나 진보정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정치는 자신의 명분에 민중들을 인질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주도권을 발휘할 수 없더라도 사회개혁에 힘을 보태야 한다. 현재 진보정당은 독자적으로 제도개선투쟁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기 때문에 그 한도 내에서 민주당과 연대할 수 있다. 특히 법제도투쟁에선 민주당의 개혁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현재의 중도보수정당인 민주당은 자주의 과제를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압박에 행동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 안에 들어가서 자주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현재로선 망상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해방과 자주권실현이 실현되려면 민주당 밖에서 독자적인 세력이 형성되고 이들이 민주당과 경우에 따라 협력하거나 맞서면서 실천해나가야 한다.
진보정당이 제도권 정당을 추구하는 한 제도 내에서 지분 확대와 제도개선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제도적 동력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반면 광장에서는 민중들과의 연대투쟁에 주력해야 한다. 물론 정체성운동에 치중하는 민중운동의 일부는 원내의 사회개혁에 동참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으나 다수의 민중들은 개선 자체도 절실하다.
평등계열은 제도정당에 진입한 이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정치, 소수의 가치지향들을 무지개처럼 연합하는 정치를 추구했으나 그 본질은 노동자와 시민 등 다수에 의한 사회변혁과 거리가 멀다. 대중적 기반을 상실해가는 평등계열의 진보정당들은 진실로 변혁을 지향한다면 변혁의 주체인 다수 인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2) 대중투쟁의 자주전선 건설과 자주계열의 정치적 단결
(1) 반미와 미군철수 및 통일을 포괄하는 정치강령으로서 자주
1. 남의 진보정치세력과 민중진영은 남북교류와 통일문제에서 북과 협의할 수 있으나 남의 변혁문제는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북이 지도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제대로 작동된 적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남의 운동세력들이 남의 변혁을 책임져왔다.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고 이후 통일을 지향해야 하지만 남과 북은 사회체제, 계급구성, 운동과제, 주체형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남은 상대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주체사상 역시 어떤 나라의 운동은 그 나라 인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남북은 완전히 같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교류와 별개로 남의 변혁은 남의 인민들이 책임질 문제이다.
2. 경제적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의 지배를 운명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여론을 각성시키려는 반미운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반미는 감정의 표현일 뿐, 이름이나, 강령, 정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반미라는 표현은 구체적인 목표를 긍정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행동의 성향 즉 행태에 불과하다.
미국 반대라는 것도 우리운동의 진의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의 제국주의, 한반도 분단, 주한미군, 한국지배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미국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조차 미국과 협상해서 사이좋게 지내려고 한다. 단체의 이름이나 강령에 반미라는 표현을 넣다가 북미간의 화해가 일시적으로 개선된다면 그 이름이나 강령의 설득력이 훼손될 것이다.
반미의 내용은 제국주의 반대, 미국지배 반대, 주한미군 철수, 군사주권 회복, 분단정책 반대 등이고 이러한 것들을 포괄하는 정립된 표현은 자주권 실현이다. 특히 자주는 반미와 달리 직접적으로 남북통일을 지향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지속될 단체의 이름이나 포괄적인 최고 강령은 자주라고 본다.
3. 통일은 남북 모두의 장기적 과제이지만 당분간 구체적인 통일사업은 어려운 실정이다. 남북교류나 통일은 북이라는 상대방이 있는데, 북이 통일사업을 후퇴시키고 남북교류의 문을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6.15선언 이후 남북교류와 통일논의를 전제로 각종 남북해외 3자기구가 활동해왔으나 북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파트너 기구를 폐지했다.
3자기구의 한쪽 파트너가 사업중단을 선언한 상태에서 남과 해외의 파트너가 사업을 못하면서 유명무실하게 잔존할 수 없기 때문에 범민련과 6.15기구 등은 조직전환을 했다. 중요한 것은 북은 수령체제라는 최고수준의 집단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즉 중요한 문제를 당과 국가에서 순차적으로 밑으로부터 토론하여 그 합의사항을 수령의 결정형식으로 선언한다. 당과 국가의 결정이 일사분란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통일사업 역시 그렇게 폐지됐지만 국내외 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한다면 북은 역시 같은 방법으로 큰 무리 없이 과거의 결정을 수정할 수 있다.
반면 남은 계급이라는 다양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입장들이 경쟁하면서 사회 전일적 합의가 어렵다. 한번 결정한 것을 뒤집기도 어렵다. 다시 말해 통일사업을 폐지하자는 결정도 어렵고 설사 폐지한다고 했다가 복원한다는 결정도 어렵다. 만약 의견이 분분한 남에서 그런 널뛰기 결정을 한다면 통일사업에 대한 대중적 신뢰와 동력이 상당히 훼손될 것이다.
남에서 통일사업의 후퇴는 북처럼 폐지의 형식이 아니라 장기적 과제로 재설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즉 통일이라는 목표와 강령은 수정하지 말고 당면사업에서 후퇴시키는 것이다. 물론 남북해외 3자기구는 불가피하게 조직전환을 할 수 밖에 없다. 향후 통일은 장기사업, 남북교류는 당면한 사업으로 배치하되 먼저 자주화투쟁에 주력하고 이후 한국정권의 태도변화, 북미대화 등 조건이 변화될 때 남북의 신뢰가 회복되도록 남북교류사업부터 복원해야 할 것이다.
(2) 가능태로서 민중전선과 현실태로서 자주전선
사회변혁이 실현되려면 정치부대로서 당을 중심에 놓고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포괄적인 민중전선제와 각 부문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대중조직이 상승작용을 해야 한다. 민중전선체는 자주와 평등의 의제를 포괄해야 하니 과거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진보연대로 포괄하려고 했던 방향이 타당하다.
문제는 진보정치가 분열되고 그 여파로 대중조직 내의 긴장도 심각한 상황에서 자주계열과 평등계열이 포괄적인 민중전선체를 구성하기 힘들다는 현실이다. 실제로 진보연대, 민중의힘, 민중행동 등이 존재하고 존재해왔지만 의제만 통합했을뿐 평등계열까지 포괄하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그나마 평등계열과 자주계열이 동거하는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 포괄적인 민중전선체 건설을 꾸준하게 시도해야 하지만 현재로서 난망하고 장기적 과제이다.
반면 자주의 문제에선 자주계열 전부가 공동대응을 할 수 있고 일부 평등계열도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일단은 자주적 의제를 포괄하는 자주전선을 먼저 강화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진보연대나 민중행동도 자주의제를 담당하지만 평등의제와 평등계열을 포괄해야 하는 본래의 조직목적이 있으므로 자주화투쟁에만 주력할 수 없다.
자주전선을 병렬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현실에도 기인한다. 한국과 같은 후기산업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위상과 조건이 개선되므로 평등의제와 평등계열의 경우 과거에 비해 변혁의 의지와 동력이 약화된다. 실제로 민주노총을 보더라도 과거와 달리 체제전복보다는 체제 내 개선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반면 남북관계 개선, 미군철수, 군사주권 회복, 미국의 내정간섭 극복, 통일완수 등 자주화 의제는 한국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조건들을 전 민중적으로 쟁취해내는 것이다. 자주전선을 현재로선 불투명한 민중전선 건설 사업에 종속시킬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자주전선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통일연대와 민중연대를 포괄하는 상설연대체가 건설돼야 한다는 2000년 초기의 평가는 타당한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포괄적 민중전선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3) 자주계열 정당들의 연대연합
1. 자주계열의 각 조직들은 진보정당 분열 이후에도 외형적인 몸집을 키우는 등 견고함을 과시해왔다. 하지만 최근 후기산업과 저출산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북의 통일사업 후퇴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내부적으로 조직력과 정치력이 약화되고 있다.
인천지역의 자주계열은 이미 단일조직성을 상실했으며, 수도권 지역의 자주계열도 최근 지도중심이 약화되면서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주계열은 특히 원내진출이라는 공직을 놓고 내부적으로 긴장을 경험해왔다. 정의당에 결합한 인천지역의 자주계열처럼, 진보당 역시 향후에 의회주의의 블랙홀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현재 자주계열들은 커다란 노선차이가 없음에도 조직활동과 정치활동을 따로 하고 있으며, 연대수준마저 낮다. 이들이 총적 지도중심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사에 연연하고 조직경쟁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가보안법 사건이 남발되고 형량이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 지나치게 가혹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에 사력을 다해 온 자주계열은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관련단체들이 분산돼 있고 공안사건 대응도 각각의 조직들이 자기 사건 중심으로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연대의 의지조차 실종되고 있다.
자주계열은 연대연합을 통해 사안별로 공동대응을 하고 대중투쟁의 자주전선 건설에 힘을 모으는 한편 궁극적으로 자주정치를 확대하기 위한 정치적 연대와 단결을 실현해야 한다.
3. 자주계열들은 가능한 한 국민주권당, 민중민주당, 진보당처럼 이미 존재하는 자주계열의 정당에 각자의 조건에 맞게 집결할 필요가 있다. 자주계열의 정당들은 사안별로 대중투쟁을 연대하고, 공존할 수 있는 제도권 정당모델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제도권 내에서 정당연합의 형태로 단일대오를 형성하되 조직운영과 정치투쟁에서 독자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던 장년세대들은 당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보단 당은 청년들에게 맡기고 대중투쟁의 자주전선을 확대 강화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좋다. 서로간의 과거의 묵은 감정도 있으니 당에서 소모적인 갈등구조를 복원하기보단 투쟁전선 복원에 나서는 것이 생산적이고 인생의 마지막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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