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미러 순회회담2. 조중러연대의 첫 시험대 : 두만강 출해권

중국의 동해 진출을 막는 조러의 두만강자동차다리

조선의 나선특별시와 러시아 하산지구, 중국의 훈춘이 둘러싼 ‘두만강국경 자동차다리’(하산-두만강교)의 ‘높이’가 조중러연대의 첫 번째 시험대이다. 조선의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인해 조러관계가 동맹으로 급변하자, 양국은 물자 교류의 필요성 때문에 하산-두만강교를 예정보다 6개월이나 빨리 정상회담 2주기인 2026년 6월 19일 개통하기로 했다. 

문제는 조선과 러시아를 직접 연결하는 이 다리의 높이가 기존의 두만강철교와 마찬가지로 7미터에 불과해 두만강에서 동해로 대형선박이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다리의 건설계획이 발표된 2024년부터 지금까지 다리의 높이를 높이거나 두만강을 더 깊게 파 항로를 만드는 준설을 하기 위해 조선과 러시아를 설득하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중러는 2024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류를 통해 바다로 나가 항해하는 사안에 관해 조선과 '건설적 대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2025년 5월과 2026년 5월 중러공동성명은 두만강 부근에서 북중러의 협력과 중국의 동해출입권에 대해 공조하기로 재확인했다.

2026년 성명은 “1991년 (중국 선박의 동해 접근권을 허용한) 중국과 소련 간 동부 국경에 관한 합의 제9조 정신에 따라, 조선과 두만강을 통한 해양 접근에 관한 3자 협상을 진행한다”고 명시해 2025년보다 중국의 숙원이 더 진전됐다. 중국과 러시아가 중국의 동해 출입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선과 대화를 한다고 연이어 발표했지만 정작 조선은 중국에게 최종적인 동의를 주지 않고 있다.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다리들을 통해 조선과 교류하고 있으며 조선의 무역 9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현재 조선과 러시아를 잇는 통로는 1959년 개통된 조선-러시아 우정의 다리(두만강철교)가 유일하다. 이 철교는 한국전쟁 당시 소련이 조선에 군사적 지원을 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임시선로를 대체한 것이다. 

하지만 이 철교는 단선이고 차량이 통행이 불가능하며 시설이 낡아 대규모 물자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없었다. 이에 2024년 6월 19일 조러 정상회담에서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새로운 다리 즉 두만강국경 자동차다리(하산-두만강교)를 건설하기로 했다. 

왕복2차선의 이 자동차전용다리는 화물트럭 200대를 포함해 하루 300대를 처리하고 있고 이와 별도로 2,850명의 인원을 처리할 수 있다. 즉 연간 109,500대의 차량 통행이 가능하며, 향후 시설 확충 시 하루 최대 800대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 러시아 측은 조선으로부터 파병이나 건설인력을 대규모로 지원받을 수 있고 조선도 에너지와 식량 등을 대규모로 지원받을 수 있다.


중국의 동해진출을 막아 온 조선과 러시아

1959년 두만강철교가 완공될 당시 흐루쇼프가 모택동에 대해 스탈린식 1인 통치를 비판할 때라서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또한 1956년 조선에서 친소파와 친중파가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김일성 주석을 제거하려다 실패했는데, 이 사건으로 조선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1959년 두만강철교로 인해 중국은 동해로 진출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중국의 제안에 따라 유엔 개발 계획 (UNDP) 주도로 시작된 "두만 개발 계획" 이후 중국은 러시아와 조선에 철교를 개조할 것을 제안해왔지만 양국은 거부했다. 

원래 중국은 19세기 중엽까지 두만강을 통해 동해에 자유롭게 통했다. 1858년 러시아는 청나라에 아이훈(愛琿) 조약 체결을 강요해 헤이룽장(黑龍江) 이북의 60만㎢를 영토에 편입시켰고 연해주 지역도 청과 공동관리하게 됐다. 러시아는 1860년 베이징조약을 강요해 공동관리구역이던 연해주 40만㎢를 차지했고 청은 동해로 나가는 출구를 상실했다. 

청의 전권대사(흠차대신) 우다청이 1886년 동쪽 국경을 정하는 토자비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러시아를 설득하여 훈춘동계약(琿春東界約)을 통해 토자비를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고 그 결과 청의 영토는 실날처럼 길게 동쪽으로 10리가 더 연장됐다. 

특히 우다청은 두만강 하구가 러시아의 관할이긴 하지만, 중국 국기를 단 선박이 러시아의 방해를 받지 않고 두만강의 거쳐 동해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러시아의 동의를 얻어 이 조약의 부건(附件)에 명시했다.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 방천(防川)의 토자비에서 두만강 하류 동해까지 15㎞이다. 

1910년 두만강 변에 건설된 훈춘항이 어항과 무역항의 역할을 했으며 1929년 기록을 보면 어선과 여객선을 포함해 연간 1,500척의 배가 동해를 왕래했다. 그런데 1938년 일본이 관측 요충지인 장고봉(張鼓峰)을 기습 점령하자 소련은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반격에 나섰고 개전 13일 만에 일본과 소련은 장고봉을 가르는 능선을 만주국과 소련의 국경선으로 정하는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장고봉 사건 이후 후 러시아와 일본이 군사 안보상의 이유로 그때까지 허용되던 중국 선박의 동해 통항을 금지시켰다. 


중국이 동해로 진출하면 국제경제와 국제안보의 대사변

중국이 두만강 출해권을 얻을 경우 북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물류기지와 네 번째 함대인 북극함대를 창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과거 북양함대는 지금의 서해에 한정됐지만 북극함대는 동해까지 포함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중국이 일본 열도 사이에 있는 동해와 태평양의 통로를 관할하는 러시아와 협력하여 동해로 진출한다면 중국은 미국이 설정한 제1, 2, 3 도련선을 순식간에 돌파하고 태평양으로 나가 해양제국으로 발돋음하는 것이다. 

중국이 동해로 진출한다면 태평양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하는 미국에게 사변이나 다름없다. 북태평양을 중국과 공유해야 하는 러시아도 중국의 동해 진출을 반대한다. 조선은 서해에 이어 동해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하고, 두만강 하류 통한 중국의 대규모 국제무역은 두만강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줄 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대외개방으로 인해 체제의 불안요소가 높아진다. 

2013년 장성택이 숙청된 이유 중의 하나도 장성택이 나진시 개발과 신압록강대교 건설 등을 통해 지나치게 친중국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2013년 중국이 완성한 신압록강대교는 조선이 협조하지 않아 아직도 개통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세관과 진입도로를 새로 짓는 등 조선의 편의를 배려할 태세이나 조선은 여전히 조선쪽 연결부분을 완공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퇴색시키고, 동해 출입권을 얻기 위해 조선에 당근을 주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미국의 눈치를 덜 보면서 대북제재를 느슨하게 이행하면서 조선과의 교류를 확대했다. 조중무역은 2025년 팬데믹 이전의 수준을 이미 회복했으며, 최근 1년간 20% 이상 교역량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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