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문제의 기원(영미패권,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

오스만제국의 해체와 중동의 탄생

오스만 제국은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을 도와 1853년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에게 빼앗긴 지역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차 대전 당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들에게 “영국에 협력하면 전쟁 후에 독립시켜 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들 민족의 반란을 유도하였다. 

1920년 세브르 조약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어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금의 터키로 축소되었다. 아라비아와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모로코와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지중해 동쪽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하여 점령하였다. 영국 위임통치령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설치되고 프랑스 위임통치령은 시리아 및 레바논에 설치되었다. 이밖에도 프랑스는 마라슈, 우르파, 안테플 등을, 이탈리아는 아나톨리아 남서부를 차지하였고 아르메니아는 독립하였지만 터키의 침공을 받은 후 소련에 복속되었다.

오늘날의 터키 ·이라크 ·이란에 걸친 쿠르디스탄 지역에 거주하던 쿠르드족은 세브르조약으로 자치정권이 약속되었으나 로잔조약으로 자치권이 취소되었다. 그리스는 터키로부터 추가적인 영토를 양보받기 위해 세브르 조약에 반대하였다. 그리스는 터키를 침공하였지만 1922년 케말 파샤가 그리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그리스와 터키는 키프러스를 남북으로 분단시켰다.


이스라엘의 탄생

1차 대전 당시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인의 반란이 자주 발생하였다. 영국은 유대인을 2만 명 이상의 하가나(Hahagana)라는 방위조직으로 무장시켜 아랍인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다. 영국은 1915년 맥마흔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에게 돌려줄 것을 약속하였는데, 동시에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서 국가를 건설하도록 허용하는 약속을 하였다. 

1947년 유엔은 이 지역을 아랍인 지역, 중간지대, 유대인 지역으로 분할하였으나 아랍인들이 반발하였다. 유엔의 결정 이후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에 근거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려고 몰려들었다. 이스라엘이 독립전쟁 당시 초기에 영국의 지원을 받는 아랍국가들에게 고전하였으나 미국이 입장을 바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함으로써 전세가 역전되었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침공하였지만 미국이 이집트의 편을 들면서 중재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개전한 대가로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핵무장을 했고 미국은 이를 용인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와의 분쟁을 통제하면서 중동에서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영국 대신 미국이 중동지배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이슬람의 정치지도자 술탄의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스스로 종교지도자 칼리포로 자임하였다. 영국의 국방장관인 키치너는 무함마드의 고향인 아라비아의 맹주 이븐 사우드에게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해 칼리프가 될 것을 선동하였다. 키치너는 영국령 이집트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공격해 오스만 제국의 힘을 빼 놓으면 이븐 사우드가 오스만 제국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이븐 사우드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1902년 리야드, 1921년 러시드, 1925년 헤자즈 왕국을 점령하고 1927년 제다 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로 독립을 승인받았다. 

영국은 1886년 랑군오일(Rangoon Oil), 1909년 Anglo-Persian Oil Company(APOC), 1915년 British Petroleum Company, 1935년 Anglo-Iranian Oil Company(AIOC)를 통해 중동의 에너지를 장악하였다. 1928년 미국과 영국 및 프랑스의 석유회사가 터키, 레바논, 요르단, 예멘, 오만,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구 오스만 영토에서 경쟁하기 않기로 합의하는 적색협정(Red Line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루스벨트대통령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끝내고 수에즈 운하 근처의 미국 호위함 쿤시호에서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영국에서 완전히 독립하도록 지원하기로 하였고, 그 대가로 영국 대신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를 제공받기로 하였다. 

영국은 1919년 이란을 러시아혁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보호령으로 삼았다. 영국은 1920년대 이후 이란의 원유를 100% 독점하는 대신 수익의 14%를 이란에게 주었다. 영국은 미국 등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이란을 독립시켰다. 1954년 이란 내에서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던 모사데크 총리를 미국이 쿠데타를 주도하여 내쫒고 팔레비 전제왕정을 수립하였다.

수에즈 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종속됐으며, 그 여파로 중동국가들은 친미국가로 전환됐다. 미국은 우방국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오페크를 조종하면서 산유량과 유가를 통제하였다. 미국이 에너지 자급율을 높임에 따라 동맹국의 수요를 확보하고 경쟁국의 공급과 수요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란의 고립과 핵무기 개발

이란은 이슬람의 소수파인 시아파에 속하며 일찍이 세속주의와 민주주의 및 공화주의를 경험했으나 팔레비 왕조를 타도한 후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다수파인 수니파에 속하며 엄격한 신정국가와 독재적인 왕정체제이며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수니파는 전 세계 무슬림의 85~90%를 차지하며 중동의 수니파 이집트, 터키, 요르단, 바레인, 카타르, UAE 등 모든 국가는 친미국가이다. 반란군이나 테러단체를 제외하면 미국에 저항하는 수니파 국가는 없다. 

수니파 국가들은 미국의 압력, 정권유지와 이란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협조한다. 미국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주도해 UAE,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도록 했으며, 사우디아라바이 등 다른 수니파 국가들에게도 아브라함 협정을 강요하는 중에 가자전쟁이 발생해 난처해졌다.

이란은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과 수니파 국가들의 제재를 받고 있으며, 미국이 지원하는 이라크와 이스라엘의 침략을 받아왔다. 소련 붕괴 이후 중러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이란은 외교안보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2015년 이란과 P5+1(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 독일)은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통해 핵무기 개발 중단과 제재 완화에 합의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이란은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제한(3.67% 수준, 15년간 300kg)하고, 핵연료 주기 활동을 축소하는 대신 서방의 경제 제재를 해제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정국주도권 장악, 중러 견제, 원유 장악 등의 이유로 민주당 정부가 베네수엘라, 쿠바, 이란 등과 맺은 모든 협약을 폐기하였다. 이후 이란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이란은 우라늄 농축도를 60%까지 높이며 무기급(90%)에 근접한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정국혼란과 전쟁의 촉발

빈야민 네탄야후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출신으로 형이 1976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인질작전 중 전사한 것에 충격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2022년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 총리를 총 17년 이상 역임하고 있다. 그는 2019년 배임, 뇌물, 사기 혐의로 기소됐으나 총리로 있으면서 전쟁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 

그는 전쟁이 종식되거나 총리직에서 물러날 경우 사법처리될 수 있기 때문에 총리직과 전쟁 수행에 목을 매고 있다. 그는 가자지구에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극우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했으나 2023년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을 만들려다 전국적인 항의집회와 지지율 폭락으로 실각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으로 가자전쟁이 시작되면서 전쟁에 대한 지지율이 급등하자 그는 실각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는 레바논, 시리아, 이란을 공격하면서 전쟁을 확대시켜왔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전까지 세속적인 자유주의 친미국가였기 때문에 현재의 세속적인 자유주의 세력은 신정체제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다. 이란은 다민족국가로서 특히 쿠르드족은 서방의 지원 아래 무장독립운동을 해왔다. 이란은 서방의 제재로 인해 경제난을 겪어왔지만 트럼프 2기에 와서 이란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입품 등 물가가 폭등하고 테헤란 지역의 최악의 가뭄으로 식수난까지 발생했다. 

2025년말부터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는 테헤란에서 상인들과 대학생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으며, 쿠르드족의 무장활동 등 지방의 반정부활동도 증가했다. 미국과 서방의 정보기관은 현지에서 반정부활동과 반란을 조장했으며, 스타링크 6천개와 무기를 이란 내 반정부세력에게 제공했다. 이란 정부는 테헤란 등 전국에서 집회참여자와 반정부활동에 대하 강경진압에 나서 서방의 주장에 따르면 수천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서방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테헤란 등 이란 전 지역에서 반정부활동이 소강상태로 전환됐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등 12일 전쟁이 2025년 6월 24일 휴전으로 종식된 후 네타냐후는 부패재판의 재개, 지지율 실추로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특히 네타냐후는 2026년 예산안이 부결되면 조기총선을 해야 하고 네타냐후의 실각은 기정사실이었다. 네타냐후는 정권유지를 위해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했고 그러려면 미국을 설득해야 했다. 

전쟁명분은 이란의 반정부세력에 대한 지원, 핵물질 탈취, 원유장악을 통한 중러견제 등이었다. 결국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했으며, 전쟁 중이던 3월 29일 예산안이 극적으로 통과되면서 네타냐후 정부는 붕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수상은 트럼프를 이란전쟁의 수렁으로 몰고 갔다. 지난 2월 11일 네타냐후 등 이스라엘 지도부는 백악관의 전투상황실에서 트럼프 등 미국 지도부들에게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한 후 이란의 이슬람정권을 전복하고 팔라비 손자 등을 내세워 친미정권을 세울 수 있다.”면서 미국의 참전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랫클리프 CIA 국장만 “이란의 지도부 제거만 가능하고 나머지 목표는 불가능하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케인 합참의장도 미군의 피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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