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격과 고립을 피하려고 조선이 핵개발을 완료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액아더 사령관의 제안에 따라 조선과 중국 국경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조선에 대해 핵공격을 위협했다. 이에 조선은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 산하에 핵무기 연구시설을 설치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은 조선의 주요 도시와 시설에 핵 공격을 감행하는 전쟁계획을 수립했으며,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했다. 이에 조선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70년대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소련은 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고자 핵의 평화적 이용과 연구를 조건으로 영변원자로 건설을 지원했다. 이 시기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각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기 때문에 핵보유국들은 이를 저지하고자 했다.
소련 역시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고자 조선에게 시범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도록 했다. 그런데 소련이 개방되면서 한국은 중소 등 공산권과 수교를 맺었지만 미일 등 서방은 조선과 수교하기는커녕 조선을 고립하여 압살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중소 등 전통적인 우방에게 외면당한 조선은 경제적 군사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높였다. 조선은 소련 붕괴 이후 무기급 플루토늄이 추출하면서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미국이 북의 핵무기 개발 중단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면서 제네바협상이 진행됐고 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를 유보했다. 1994년 제네바협상이 타결됐지만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국 하원은 제네바협상에 따른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거부했고, 조선은 다시 핵개발을 재개했다.
클린턴 2기 마지막 해에 북미는 다시 어렵게 조미코뮤니케를 통해 핵협상에 합의했지만 이듬해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행을 거부했다. 부시정권은 조선이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9.11테러 이후 조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이에 조선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을 완전히 탈퇴하고 핵무기는 물론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올렸다. 이에 2004년 6자회담이 시작돼 2005년 어렵게 9.19합의안이 발표됐으나 미국이 조선의 자금을 동결하자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조선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대응하자, 미국은 조선의 자금을 풀어주고 다시 6자회담을 재개했지만 최종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2008년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북을 무시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채택했다. 조선은 2016년 오바마 정부가 끝날 때까지 중러가 포함된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완료했다.
미국이 조선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 이유
미국은 조선과 외교적 합의를 통해 핵개발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조선의 요구대로 북미간의 수교가 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중러를 겨냥한 전략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북과의 적대적 관계를 핑계로 계속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조선과 전략적 합의를 할 수 없었다.
미국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통해 조선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는 카드를 쓸 수 없었다. 냉전시대에는 아직 조선의 핵개발의 수준이 낮았고, 무엇보다 조선을 공격할 때 조선의 동맹인 중소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었다.
냉전붕괴 이후 중소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때 조선은 서울 이북의 주한미군과 한국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장사정포를 대량으로 배치했다. 1993년 클린턴은 조선의 핵시설을 무력화하는 족집게 공습을 고려했지만 장사정포로 인한 한미의 피해 때문에 실행할 수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북이 괌과 일본에 도달할 수 있는 각종 미사일을 배치하고, 2010년 이후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능력을 보유하면서 무력방안은 더욱 힘들어졌다. 현재 전략핵, 전술핵을 각종 미사일을 통해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 일본, 한국 등을 조선이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완비해 무력방안은 검토대상도 아니다.
조선과 핵협상에 목을 매는 미국
조선이 본토에 대한 전략핵무기 공격 능력을 갖게 되자, 북핵은 한반도나 동북아 문제가 아니라 미국 본토의 생존에 관한 문제로 대두됐다. 핵전쟁의 특성상 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의 워싱턴이나 전략사령부에 한반이라도 타격을 한다면 전 세계가 공멸하는 미중러의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이라는 호랑이가 발톱이나 이빨에 상처를 입는다면 평상시에 호랑이에게 도전하지 못했던 곰, 하이에나, 표범이 호랑이를 노리기 때문이다. 즉 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의 핵심에 명중되는 순간 미국은 자신의 약점을 노리는 중러에게 대규모 핵공격을 고려해야 하고, 중러 역시 그런 상황을 고려하여 대규모 반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조선과 핵전쟁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또한 더욱 위험한 상황에 가지 않도록 조선의 핵무장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전문가와 정책결정가들은 조선의 비핵화는 먼 장래의 일이고 당장은 핵군비통제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이 조선과 핵군축협상을 하면 조선의 핵무장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장기적으로 조선의 비핵화, 단기적으로 핵군축을 조선과 협상하려고 한다. 반면 조선은 핵군축만 협상하고 비핵화는 장기적인 의제로 상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장단기 구별 없이 바로 비핵화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조선과 핵협상을 하는 것은 한반도나 동북아 문제가 아니라 미국 안보문제이므로 한국이나 일본의 입장을 크게 고려할 수 없다.
현재 조선은 북중러연대에 만족하고 있어 북미회담에 소극적이다.
과거 중러는 조선이 망하지 않을 정도로 미국과 함께 조선을 압박해왔다. 근데 미국의 대중 강경책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러는 조선과 강력한 연대를 맺었다. 조선은 중러와의 협력으로 국제제재를 무력화시키고 경제적 난관을 극복했으며, 핵잠수함 등 핵무기 고도화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 회담이나 하노이 회담에서 보듯이 미국과 협상하는 것은 조선의 위상을 높이는 선전효과를 제외한다면 실익이 없다. 트럼프가 조선과 전략적 화해를 할 처지도 안 되고 설사 그런 합의를 한다고 해도 미국의 의회와 차기 정부에 의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 입장에선 핵무장을 완성해 미국과 힘의 균형을 맞추는 무장평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더구나 현재 중러가 미국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조선이 미국과 화해무드를 조성한다면 이는 중러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어렵게 성사시킨 중러와의 협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조선은 사진찍기용에 불과한 북미회담 대신 북중러연대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분쟁을 조정해 미중분업을 일정부분 수용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면 중러는 다시 조선 대신 미국을 선택할 것이다. 그 즈음에 조선도 중러와의 협력에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고 미국과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