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유혈진압과 미국의 개입에 대한 운동진영의 입장 대립

 전 유물론자라서 이란의 이슬람정권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이슬람정권이 무너지고 사회주의정권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권이라도 자신의 민중들을 거리에서 즉결처분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근데 이건 제 개인 소망이고 이런 주장을 전면에 내걸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미국의 침략을 규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정세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미국에게 지배당하고 있어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우리 처지에도 맞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제국주의 간섭과 정책을 규탄하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민중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소망할 때라고 봅니다. 

개인은 양비론을 가질 수 있지만 단체가 양비론을 가진다는 건 그 단체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어떤 단체가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하면서 하머스의 민간인 사살과 납치가 이스라엘에게 빌미를 주었다고 함께 규탄한다면 그 단체는 뭘 지향하는 것까요? 아마도 중립적인 인권존중을 외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뉴스 해설이거나 전문가 논평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칭 진보?, 좌파?, 사회주의자?라고 하면서 <미국의 침략은 규탄하지만 미국한테 맞을 짓 한 놈도 무너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엉뚱하다고 봅니다. 심지어 공정하게 한번은 미국의 침략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한번은 민중을 학살하는 이란정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머리를 때리면서 등을 미는 것과 같은 겁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행위에 정당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이란 뿐만 아니라 조선, 소련, 중국, 리비아 등등에 대한 이러한 양비론은 오래된 행태입니다. 

마르크스는 젊었을 때 맨날 봉기를 주장하는 맹동주의자들과 싸웠고, 중년 이후에는 대중투쟁하지 말고 선거투쟁만 하자는 라살주의자와 싸웠습니다. 오늘날 진보 혹은 좌파 혹은 사회주의 내부의 양비론자와 상대해보면 마르크스의 답답하면서 분노스런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칭 사회주의자이지만 대중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는 강단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란 이런 것이다고 정의 내린 후 거기에 맞지 않으면 다 비판합니다. 자기는 자본주의 안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소련도, 중국도, 조선도, 베트남도, 쿠바도, 베네수엘라도 다 틀렸다고 합니다. 체게바라 모자를 쓰고 자본주의를 즐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문화냉전과 CIA>라는 책에서 보듯이 우익에 매수당한 반공좌파도 있고, 빗나간 트로츠키럼 스탈린이 싫어서 결과적으로 미국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수정파들은 다수와 다른 정체성을 고집해야 자신들의 조직이 차별화되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를 합니다. 문제는 대중과 실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이런 양비론이 멋있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기득권, 저것도 기득권 그러니 다 비판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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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유혈진압과 미국의 개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복잡하고 상충되는 현실을 일면적으로 해석하면 오류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대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민중들이다. 정부의 무능력은 주요하게 미국의 제재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무능력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시위대 일부는 미국의 공작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특히 군중과 정부의 충돌을 야기하도록 하는 과격 시위대 중에는 그 비율이 높다. 사망자 중 일부는 무고하게 희생됐다. 하지만 시위대 일부는 정부와 상호 무력투쟁에 의해 사망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시위가 미국에 의해 촉발된 것은 아니다. 민중들의 저항의 결과이다. 근데 미국은 계속해서 이런 시위를 촉발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사태가 확대된 것은 미국의 개입이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은 현지인 공작을 통해 실제로 시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위대에게 정부기관을 점령하고 정부와 맞서라고 선동하고 있다. 미군이 투입될 것이니 걱정 말고 투쟁하라고 공개적으로 선동한다. 

현재조건에서 이란 정부는 이번 시위를 미국이 사주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것이 일부 사실이고 그러한 여론몰이가 자신들의 과오를 덮고 유혈진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1953년 미국의 개입으로 민주정권이 전복되고 미국이 세운 팔레비 왕조가 재집권했다. 그리고 그 팔레비는 미국과 함께 이란을 망치고 민중들을 학살해왔다. 

현재 이란국가는 1979년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친미팔레비 정권을 전복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다. 팔레비의 손자 레자 팔레비는 자신이 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시위를 선동하고 트럼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트럼프의 중동특사는 레자 팔레비를 비밀리에 만나는 등 이란 전복을 위한 공작을 진행 중이다. 이쯤 되면 이란정부는 이번 시위를 반국가행위로 보고 유혈진압을 정당화할 명분을 얻은 셈이다.


미국의 반체제 시위와 혼란 공작은 증명된 역사적 사실

미국의 이승만 제거계획 에버레디계획에서 보듯이 미국은 친미정권이라도 미국 말을 안 들으면 정치와 군사 체제 깊숙이 심어 놓은 고위급을 통해 쿠데타로 정권을 바꾼다. 박정희 제거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미정권이라면 암살, 쿠데타, 반정부활동, 시위와 혼란조장 등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주로 중동과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의 반미정권에 대해 그런 공장을 해왔다.

1956년 헝가리 봉기 당시 ‘자유유럽방송’의 헝가리 지국은 만약 봉기가 일어난다면 미국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내용을 방송하여 반소 민족주의자들을 부추겼다. 헝가리 봉기의 참사는 CIA 내부에 선전방송의 무책임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진 샤프가 정립한 ‘스워밍’ 전술은 비폭력전술로서 야당의 시위를 지원하여 적대적 정부를 민주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 전술에서 인터넷이나 휴대폰 메시지 등 다중의 최첨단 네트워크를 활용하였다. 이런 방식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를 하야시키는데 적용되었다. 또한 이 방식은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미정권을 탄생시켰던 오렌지혁명에도 활용되었다. 

진 샤프는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 직전에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하여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였다. 그가 1990년 쓴 저서 『시민을 토대로 한 방어 전략』은 발트 3국의 독립시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독립시위를 주도한 리투아니아의 국방장관은 “이 책은 “핵폭탄보다 더 갖고 싶은 책이다”라고 할 정도로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진 샤프의 1993년 저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 해방을 위한 개념 체계』 역시 공산정권이나 반서방정부를 타도하는 비폭력적 전술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진 샤프의 개념을 받아들여 소프트 파워 전략을 구체화한 ‘전방위 지배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또한 전방위적으로 적대국가를 무력화하는 전술을 활용해야 한다.

1953년 CIA의 커밋은 이란의 모사데그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언론과 군대를 매수하였다. CIA는 특히 이란 출신 갱단을 매수하여 모사데그지지 시위를 하면서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또한 깡패들로 하여금 “모사데그를 지지한다”고 거리에서 외친 후 폭동을 일으켜 모사데그가 폭력적인 공산주의자라는 여론을 만들었다. 그밖에도 시위대끼리 충돌하도록 하여 이란인들이 모사데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도록 하였다. 

1970년 아옌데의 당선 직후부터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아옌데 정권 전복을 확고한 정책으로 결정하고 CIA에 비밀 공작을 지시했다. CIA는 아옌데 정부에 반대하는 파업, 특히 칠레의 물류 운송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트럭 운송 노조 파업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칠레는 지리적 특성상 물류 대부분을 트럭에 의존했기 때문에, 이 파업은 경제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란사태에 대한 분석과 입장표명은 차원이 다른 문제

이란 사태를 분석하려면 상충되는 다양한 측면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실관계 중 어떤 측면만 부각시킨다면 이란정부를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미국편에 설 수도 있고, 심지어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침묵할 수도 있다. 결국 이란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이 분석자인지, 아니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 단체인지에 따라 어떠한 결론도 합리화시킬 수 있다.

일단 분석은 다양하고 상충되는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분석해야 하는 지위, 이를테면 언론기관이거나 학술기관이라면 이러한 분석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도하거나 공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언론기관과 학술기관도 자신의 관점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사실만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다.이란 사태에 대해 개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이고 굳이 논쟁할 필요가 없다. 

이란사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려는 단체 중 기독교도나 이슬람도 있고, 이슬람에서 이란과 같은 시아파도 있고 대립점에 있는 수니파도 있다. 물론 친미파와 반미파도 있고 사회주의자도 있다. 결국 자신의 노선을 정당화하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걸 근거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한다. 이란사태에 대해 흑색을 들거나 백색을 들 수 있고 회색을 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색깔은 자신들의 노선을 대변하는 것이다. 


양비론을 취하는 단체는 원래 회색분자들이기 때문이다.

단체는 노선에 따라 입장을 표명한다. 언론인이나 학자처럼 객관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그대로 표명하는 단체가 있다면 자신들의 추종자를 규합시킬 수 없을 것이다. 솔모몬이나 황희정승처럼 입장을 표명하면 지지자를 잃어 조직을 유지하기 힘들다. 결국 노선에 따라 유리한 사실관계를 부각하고 입장을 정리한다. 단체 특히 정치단체는 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당, 정의당, 노동자연대가 베네수엘라와 이란 사태에 대해 양비론적 시간을 표명했다. 이들 단체들은 미국 제국주의 침략과 관련된 사안에서 반복적으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중립적이고 양비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회색분자들이다. 이들이 집요하게 그런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그런 양비론적 사고를 하는 구성원들이 그 조직의 다수이고, 그 조직은 양비론에 의존하여 조직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흑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니기 때문에 양쪽으로부터 받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자에 반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입장에선 회색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다. 회색은 백색이나 흑색을 취하면 지지자를 모을 수 없으니 회색입장도 이해는 된다. 


회색은 소금처럼 필요하지만 대안이 될 수 없다.

스탈린을 비판하는 트로츠키는 필요하다. 트로츠키가 있어서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망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체제가 망한 것이고, 트로츠키가 옳았고 트로츠키가 대안이라면서 여전히 사회주의를 옹호할 수 있었다. 문제는 트로츠키가 잘하는 것은 스탈린을 비판하는 것이지, 트로츠키가 사회주의 모델을 실제로 인류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트로츠키주의자 10명이 모이면 10개의 정파가 생긴다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이다. 

기존의 소련, 중국, 조선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반공좌파도 필요하다. 이러한 비판세력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회주의자나 사회주의 체제도 자신을 반성할 동기부여를 약화시킬 것이다. 운동진영의 양비론자들은 운동진영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수파, 기득권을 견제할 뿐이다. 

다수파가 밥이라면 소수파는 소금이다. 둘 다 필요하다. 소금을 밥처럼 먹으면 탈이 난다. 그렇다고 밥만 먹어도 탈이 난다. 밥과 소금이 필요하지만 어떤 단체가 밥의 역할을 할지, 소금의 역할을 할지는 자유다. 양비론은 자유다. 문제는 소금으로 밥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양비론이 마치 대안인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걸 견제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은 운동진영의 대안을 이끌려는 주류에 설 수 있다. 그때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운동진영의 비판자로서 소금의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 그땐 소금이 대안인 것처럼 너무 오만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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