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 몰입

민주노동당은 2003년 말 임시당대회를 열고 의회주의 몰입을 차단하기 위해 지도부와 국회의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이는 당의 지도역량을 원내외에 골고루 배치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대표, 부대표, 사무총장 등 선거권이 없었던 부대표 1인을 제외하고 모든 대표단이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총선이 끝난 후 주로 낙선한 지역구 출마자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국회의원이 최고위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당규를 제정하였다. 이는 원내 진출이 가능한 명망가와 원내 진출이 막힌 지역 중견활동가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의회주의 몰입으로 인한 당의 갈등을 예고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2008년 분당 직후부터 2012년 통합진보당 창당까지 ‘선 진보대통합 후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정치노선으로 삼았다. 2008년 이후 촛불집회에 나타난 정권교체의 열망을 반영하여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전체 야권은 재보궐선거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켜 승리하였으며, 민주노동당 후보들 역시 야권단일후보로 나서 지방의원은 물론 인천과 울산 등 네 곳에서 구청장에 당선되었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세력 등이 2011년 12월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 직전 민주당과의 정책연대와 후보단일화 협상을 타결하였다. 전국의 모든 선거구는 민주당 후보, 통합진보당 후보, 경선지역으로 분류되었고 그 결과 통합진보당도 지역구 8석, 비례대표 5석 등 총 13석을 얻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당내 비례대표후보 경선과정에서 부정선거 시비, 후보단일화 협상의 특혜 논란으로 깊은 내분에 빠지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선거정당화 경향은 노동자정당의 국민정당화라는 일반적인 경향뿐만 아니라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자주계열의 전망과도 관련된다. 자주계열은 궁극적으로 노동해방을 지향하지만 당면해서는 자주적 민주정부에 의한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자주계열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고양된 정권교체의 열망을 야권연대를 통해 실현하고, 민중생존권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을 달성할 수 있는 정권을 탄생시키고자 했으며, 그들 스스로 이러한 역사적 사명의식을 명분으로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자주계열의 지도부들은 이러한 자기정당성과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제도정치에 점차 몰입하게 되었고, 2012년 총선을 앞 둔 이석기 의원의 급작스런 부상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일각, 그리고 그 이후 통합진보당 역시 내심 2012년 대선에서 후보단일화 나아가서 정권교체 이후 연립정부의 구성까지 구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주계열의 정치전망은 의회진출을 통해 노동현안을 해결하고자 했던 민주노총 내 국민파의 의도와 사실상 일치하였고, 국민과 함께 하는 사회개혁투쟁이라는 민주노총의 창립정신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반면 평등계열의 경우는 서구 노동자정당의 변화과정과 유사하게 점차 원내 의석 확대를 당의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후퇴하고 있었다. 특히 진보신당의 2008년 원내 진출 실패와 그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성공은 평등계열이 과거에 반대했던 보수야당과의 선거연합을 수용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총선과 대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을 앞두고 진보신당의 잠재적인 대선후보들은 연립정부의 가능성까지 용인하였다. 

실제로 자주계열이나 평등계열을 막론하고 유력한 대선후보들은 진보정치의 이름으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대신에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명분에 굴복하였다. 진보정당 2012년 11월 26일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을 일방적으로 사퇴하였고,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 역시 모든 유권자에게 공보물을 발송하고 TV대선토론까지 한 상황에서 대선을 3일 앞두고 진보와 민주 및 개혁세력의 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주장하며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