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의 비극, 유엔사를 통해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에도 유엔사가 전작권 행사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면서 한국의 전작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전작권은 유엔군사령관이 보유하고 있고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에게 전작권을 위임받아 행사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부 근거법령에 따라 전시라도 한국군 중에는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수도방위사령부와 함참의장의 지휘를 받는 특전사령부는 한미연합사령관의 지휘를 받지 않지만 유엔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모든 한국군의 전작권을 이양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나토와 다르다. 나토의 경우 회원국의 모든 군대가 나토 소속이 아니라 회원국이 나토에 파견한 일부 군대만 나토 소속이다. 나토에 소속된 군대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미국 유럽사령관이 겸임하는 합동작전사령부 사령관이 행사하지만 나토사령부에 대해 전략적 지침을 내리는 상급단위는 유럽의 회원국이 의장을 맡는 상설적인 “북대서양 이사회”와 “군사위원회”이다. 

미국은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 줄 의사가 없다. 미국의 구상은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고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해 온 전작권의 일부를 한국에 빌려주는 전작권 전환이다. 한국정부의 공식입장은 대내적으로 전작권 환수이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 전작권 전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작권 회복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군의 구상은 미군 대장이 사령관인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고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인 미래연합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군 중장이 부사령관을 맡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군 대장이 유엔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했던 전작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미래연합사령부는 평상시에 한미연합훈련 등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한다. 

유엔사령부는 이미 2015년 커티스 M. 스카파로티 사령관 때부터 참모부를 강화하여 전투, 전력제공, 지원 등 예하 부대를 지휘통제하여 전투는 아니더라도 독립적인 전투지원이나 전투근무지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활성화됐다. 다만 2019년 10월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유엔사가 작전사령부로 전환할 계획이 없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전쟁이 났을 때 한국군 대장인 미래연합사령관과 미군 대장인 유엔군사령관, 그리고 주한미군사령관의 관계이다. 먼저 유엔군사령관은 미래연합사를 포함하여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모두에 대한 전작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18개 나라로 구성된 유엔군사령부가 전면적으로 활성화되기 때문에 한미 간의 미래연합사령부는 유엔군사령부에 예속된다. 

결국 미군은 전쟁이 나면 껍데기만 남은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을 지배하게 된다. 현재 유엔사는 1950년 이래 유엔 연감에 보조 기관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고, 유엔으로부터 받은 예산으로 운용되고 있지 않으며  유엔이 아닌 미국 합참의 지시를 받고 있다. 

1994년 6월 24일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갈리(Boutros Boutrous-Ghali)는 “유엔사는 유엔에 속하지 않고 미국만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미국이 최근 전작권 전환에 동의하면서도 유엔군사령부에 독일을 새로 합류시키고, 일본의 합류를 한국정부에 강요하는 등 유엔군사령부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엔사를 통해 한미동맹을 미일동맹에 예속하는 로드맵 추진 중

미국과 일본의 큰 그림은 한국과 일본을 묶어 중국, 러시아, 조선을 적국으로 설정하는 과거의 극동사령부를 부활하는 것이다. 먼저 일본을 재무장하여 자위대에 육해공군 합동참모본부를 설치하는 것은 이미 실행됐다. 당면한 과제는 병참기능에 머물고 있는 주일미군을 육해공군을 통합하는 전투사령부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합 자위대와 통합 주일미군을 합쳐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사한 미일연합사령부 즉 극동사령부를 창설하는 것이다. 이때 미일 양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은 그 규모나 전력이 한미 양군을 능가하므로 미군 대장이 맡게 된다. 유엔군사령관은 과거처럼 극동사령관이 맡으면 된다. 일본의 유엔군사령부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러를 가상 적국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확장될 수 있다. 즉 동북아를 하나의 전장으로 하는 사령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쿄에 있는 미군 대장이 주일미군사령관, 미일연합사령관(극동사령관),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게 된다. 한국이 미래연합사가 극동사령부에 종속되는 것을 반대한다면 평상시엔 한국의 미래연합사령부와 일본의 극동사령부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공동으로 군사훈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나면 도쿄에 있는 극동사령부가 유엔군사령부로 활성화되면서 미래연합사를 통솔하게 된다. 한국에서 미래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 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 맡고 자연스럽게 미군 중장이 부사령관을 맡게 된다. 미8군사령관은 이미 중장으로 격하됐으니 한국에는 미군 대장이 있을 필요가 없다. 

미국이 미래연합사의 작전권을 한국군 대장에게 준 마당에 미래연합사에 대규모 미군을 배치할 필요가 없다. 주한미군의 육군 주력인 미8군의 일부를 후방으로 철수하고 축소된 주한미군사령관이 미래연합사부사령관을 겸임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미 육군 3성 장군인 8군 사령관은 주한미군육군사령관, 유엔군사령부 지구사령관, 연합사령부 지구사 부사령관, 주한미군사 참모장, 연합사 참모장, 유엔사령부 참모장을 겸하고 있다.

이러한 극동사령부 창설은 이미 미국 국방부 내에서 조용히 논의 중이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2023년 9월 25일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열린 한미전략포럼에서 “한미동맹이 한반도에만 집중하는 것은 이제 적절하지 않다.”면서 "지금처럼 유엔군사령부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합하는 가칭 ‘극동사령부’ 창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극동사령부의 전제조건이 되는 조중러를 하나의 전쟁범위에 묶는 단일한 전구 논의도 진행 중이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2025년 4월 30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 조중러의 위협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반도·동중국해·남중국해 주변 지역을 하나의 전쟁구역(전구)으로 보자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을 제안했다. 그는 “일본과 미국, 호주, 필리핀, 한국 등을 하나의 시어터로 인식해 협력하자”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원 시어터’가 현실화되면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군도 중러와의 군사분쟁에 개입해야 한다. 2025년 3월에 출범한 일본 자위대의 통합작전사령부가 향후에 창설될 주일미군의 ‘통합군사령부’와 미일연합사령부를 구성하게 되면 이 미일연합사령부가 동아시아 전체를 담당하게 되고 그에 따라 일본 자위대는 동아시아 전체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이미 2026년 한미 간의 연례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와 한·미·일 3국의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중국을 겨냥한 해상 분쟁 등의 시나리오가 포함됐다. 

한미일 3개국 군대는 이미 조중러를 상대로 하는 하나의 전구 훈련을 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2026년 4월 28일 공개된 일본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함께 ‘제3자 개입’과 ‘해상 분쟁’ 등을 상정한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중국및 러시아와의 군사분쟁에  대비한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2025년 11월 “한반도의 역량은 러시아 함대가 동해에 진입하지 못하게 부담을 주고, 서해에선 중국 북부전구군과 북해함대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또 주한미군을 미·중 해상 패권이 대치하는 ‘제1도련선 내부에 이미 배치된 전력’으로 표현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북·중·러의 증대하는 위협에 맞설 방안으로 한·미·일과 필리핀 등 동맹국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며 조율된 대응을 하는 ‘킬 웹(Kill web)’ 개념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찰 위성이 북·중·러의 도발을 탐지하면, 한국의 지상 레이더가 이를 추적하다가 일본이 요격하는 식의 대응 체제다.


1957년까지 도쿄의 극동사령부가 유엔군사령부로서 한국의 전작권 보유

미군은 2차대전 당시 태평양 지역의 각종 사령부들을 통폐합하여 태평양사령부를 1947년 1월 1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 창설하고 존 H. 타워스(John H. Towers) 해군 제독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미군은 동시에 일본 도쿄에 극동사령부를 창설하고 맥아더 원수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극동사령부는 한국과 일본의 군대를 통솔하고 태평양사령부는 나머지 태평양 지역을 담당했다. 존 리드 하지(John R. Hodge) 중장은 미 육군 제24군단장으로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주한미군사령관 및 군정사령관직을 맡았으나 1948년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서 주한미군사령부와 24군단이 해체됐다. 

한국전쟁 이후 맥아더 극동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맡으면서 1950년 7월 14일 이후 한국의 작전지휘권을 행사했다. 미국 육군의 8군사령부는 1944년 미국에서 창설됐으며 도쿄에서 극동사령부 산하에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한국으로 이전했다. 8군사령부는 1954년 11월에서 1955년 7월까지 도쿄로 이전한 것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한국에 있었다. 미8군사령관의 계급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중장이었지만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2년까지 대장이었다. 

1954년 11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된 이후 도쿄의 유엔군사령부는 여전히 한국군의 작전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주로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기구로 축소되고 전투기능은 미8군이 담당했다. 이때 도쿄의 미군대장이 유엔군사령관과 극동사령관을 겸했으며, 서울의 미8군사령관은 실질적인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임하면서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이양받아 행사했다. 

1957년 7월 1일 극동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에 통합되면서 소멸되고 유엔사령부가 한국으로 이전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USFK)이 공식적으로 창설되면서 조지 데커(George H. Decker) 육군 대장이 서울에서 미 8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임했다. 일본에 유엔군사령부의 후방사령부가 창설됐다. 미8군사령관은 1978년부터 한미연합사령관까지 겸하면서 주한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까지 포함한 4개의 사령관직을 맡았다. 

하지만 1992년부터 다른 대장이 주한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을 맡으면서 미8군사령관은 중장으로 격하됐다. 미8군사령관이 중장으로 격하된 것은 육군의 비중이 감소하고 한미의 육해공군을 지휘해야 하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위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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